사진/ 1979년 개봉한 반공영화 ‘똘이장군’ 포스터

1980년대에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였다. 나는 교내 반공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한 적이 있다. 갈색 빛이 도는 갱지에 내가 직접 원고를 썼고 전교생 앞에서 열린 반공 웅변대회에서 멋지게도 1등인 대상을 차지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는 권장도서 10권을 2주 동안 다 읽고 줄거리와 감상을 적어내면 독서상이라는 것을 줬다. 매달 두번에 걸쳐서 말이다.

우리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었고 교내에 비치된 권장도서를 읽거나 교사였던 아버지가 책장사인 친구에게서 월부로 사온 명작전집, 과학전집, 화훼백과, 여행백과, 위인전, 세계명작 등 각종 전집들을 읽는 일 외에는 놀거리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2주에 한번씩 줄거리와 감상을 적는 독서카드 작성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내가 받은 상이라고는 독서상이 전부였다. 공부를 잘해서 받은 성적우수상은 한 장도 없고 모두 독서상 아니면 대의원, 회장, 부회장 같은 임명장이다.

그 시절 읽었던 책의 내용은 희미하지만 일부 도서의 삽화는 선명하게 기억난다.  내 머리속 하드웨어에 박힌 대표적인 삽화 중 하나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이승복 어린이의 입을 찢고 해괴망측한 미소를 짓는 늑대머리 북한군이었다. 북한군은 실제로 늑대머리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영화로 개봉된 후 책으로도 출판된 똘이장군을 포함해 다른 권장도서 동화책들 상당수도 반공도서였으며 북한은 ‘돼지, 늑대, 여우’ 등으로 묘사된 ‘절대 악’이라는 삽화가 담겼고 내 머리속에는 그대로 박제됐다.

반공교육 수혜자답게 매우 다양한 반공교육 도서를 섭렵했던 터라 반공 웅변대회 원고를 쓰고 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5학년때 대상을 받았다. 그 해에는 국제유네스코 미술대회도 열렸다. 마찬가지 반공과 관련해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농촌 그림이 특선을 받았다. 상장에 금장이 휘둘려진 매우 근사한, 단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영어로 ‘뭐라뭐라’ 적혀있던 그런 상장이었다.

웅변대회, 그림대회 뿐만이 아니다. 반공 포스터 그리기, 반공 표어 만들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등 ‘반공산주의’와 관련한 도내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나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당시(군사독재인 줄 알 수 없었던) 국민학생으로서, 매우 세심한 반공교육 수혜자로서 ‘반공’은 내게 참 좋은 상을 다양하게 안겨줬다. 맡은 바 임무를 다한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반공교육을 받았던 기억은 다른 기억들로 채워지며 조금씩 잊혀졌다. 고등학교 때는 정치경제 시간에 배운 것을 토대로 정치는 학문적인 것이며 전문가 영역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는 다른 세상의 것인 줄 알았다. ‘삼권분립’이 어쩌고 저쩌고… 매우 지루한 수업이었고 수업시간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회수권 10장이 900원이었는데 1000원으로 오른다는 거에 흥분하고, 더 크면 회수권이 아니라 토큰을 써야한다는 생각에 좌절하면서도 회수권을 어떻게 잘라내야 11장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안국동에 있던 학교를 마치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육교를 건너 종로경찰서 문앞을 지키는 의경들을 놀려먹다가 인사동에서 이것저것 구경한 뒤 신당동까지 가서 떡볶이에 매운닭발, 500원짜리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이 전부였던 그때 내게 정치는 재미없는 교과서 과목에 불과했다. 그런 고등학생이었다.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고 난 후 자의식은 강해지고 독서범주도 넓어지면서 어린시절 받은 반공교육의 허점과 오류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쓴 반공 웅변대회 원고에서 공산당이 싫다고 외친 이승복 어린이에 빙의되고 마치 똘이장군이 된 것처럼 “이 연사 힘차게”라고 외쳤던 내가 받은 교육들은 오류 투성임을 발견한다.  세뇌교육이었다. 그렇게 정치라는 영역이 시나브로 들어왔다.

현대사 속 비극적 사건들의 진실을 접하면서 대중을 향한 우매화 교육의 최대 피해자에 나도 포함된 것을 알게 됐다.

30년도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활개중인 공산당, 빨갱이, 종북좌파를 입버릇처럼 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의 의식속에 자리잡은 건 1970년, 1980년대 당시 반공교육 탓일까 아니면 집단최면 때문일까? 라고 궁금해한다.

논점을 잠깐 벗어나자면 빨갱이를 척결해야 한다는 이들의 언어도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 내편이 아니면 모두 빨갱이, 간첩으로 모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욕설과 극단적 비난이 절대적이다. 극우 유튜버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도 비속어와 비난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극우적 성향이 있는 분들의 언어를 볼 때면 눈쌀이 찌푸려진다.

합리적 비판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헌법을 어겨도 내편이 아니면 무조건 종북, 간첩, 빨갱이라고 단정짓는다. 오랜 시간 그들의 인식은 진화하지 못하고 “김대중은 빨갱이다. 따라서 그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은 공산화된다”는데 멈춰서 있더니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을 북한에 바칠 것”이라 했다. “문재인이 대통령되면 북한에 헌납하듯 흡수통일 시킬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그들의 예언은 늘 현실과 달랐지만 같은 예언을 수십년째 되풀이 중이다. 창의성도 없고 70년, 80년대 논리의 도돌이라니,  참 성의없다.

아직도 1970년대, 1980년대 반공교육 치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속에는 독재정권 강압지배에 대한 향수가 남은 것인가? 타인을 학대하며 쾌락을 얻는 새디즘 때문일까? 확증편향 반공교육을 너무 잘 받아서일까?

그들이 외치는 자유민주주의와 그들의 대화와 타협없는 무조건적인 비난 행태가 상반된다는 것을 알까?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반공교육의 수혜자로서 반공 웅변대회, 반공 그림대회 1등의 경험을 가진 안기자의 질문이다.

안미향 대표기자